[논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이주노동자 주거권 및 건강권 보장에 미흡한 정부 대책 관계부처 합동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 발표에 부쳐

지혜
202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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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이주노동자 주거권 및 건강권 보장에 미흡한 정부 대책

관계부처 합동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 발표에 부쳐

 

3월 2일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공동으로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 대책이 발표되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 입국 즉시 지역건강보험 가입, 지역건강보험료 경감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 확대 △주거환경개선 이행기간 부여 등의 내용이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일부 진전된 내용은 있으나, 이주노동자와 이주인권운동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권리보장에는 매우 미흡하며,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권리실현에 미달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첫째, 농축산어업에서 사업자 등록이 없는 사업장에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기존에 입국 6개월이 지나야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정부는 이번에 이를 입국 후 즉시 가입으로 바꾸었다. 당연한 조치가 늦게나마 실시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종사하는 업종 중에 가장 열악한 농축산어업의 사업자 등록이 없는 사업장에도 ‘직장건강보험’가입을 허용하라는 오랜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열악한 사업장의 노동자를 더 두텁게 보호해야 심각한 차별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텐데 근본적 해결방안은 외면된 것이다. 사업자 등록이 있는 사업장에만 고용허가를 부여하든지, 사업자 등록이 없어도 직장건강보험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

한편, 지역건강보험가입자 외국인에 대해서는 가입자 평균보험료를 내게 하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노동시간 대비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건강보험료는 월 13만원을 넘게 내야 하는 상황도 수정되지 않았다. 다만 농어촌지역 건강보험료 경감 대상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이를 감안해도 여전히 1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농어업인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에도 포함시킨다고 하나 이는 예산확보 문제가 있으므로 올해 당장 실효성을 가지긴 어렵다. 가장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가 임금대비 제일 높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지역건강보험료를 가입자 평균보험료로 납부하게 하는 정책이 시정되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일부 확대했다. 숙소 용도가 아닌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한 경우와 농한기 및 금어기에 권고퇴사한 경우,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외국인근로자가 3개월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한 경우를 추가했다. 그리고 임금체불 인정 기준을 완화하여 현행 기준을 2개월 이상 연속되는 기준으로 정했다. 또한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이주노동자 전용보험 미가입의 경우도 사유로 추가하고, 사용자 외에 직장동료, 사업주의 배우자(동거인 포함) 또는 직계존비속으로부터의 성폭행 피해도 긴급 사업장 변경 사유로 포함했다. 그러나 이렇게 변경 사유를 일부 확대하는 식으로 해서는 역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전히 이러한 사유들은 이주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며, 변경 신청이 된 이후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많게는 수개월동안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압박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직할 자유조차 없어야 하는가.

노동부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하면 임금과 노동조건이 좋은 곳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사업장 변경 제한의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고용허가 사업장은 제한되어 있기에 몰릴 수가 없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가 무한정 자리가 날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더욱이 같은 고용허가제 하에서 특례고용허가제로 되어 있는 방문취업제(H-2) 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다. 유독 일반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거세질 때 정부가 임시방편적으로 사유를 하나둘씩 추가하는 방식만 취하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생기는 것 아닌가. 미봉책만 쓸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인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주거환경 개선을 한다는 명분으로 농어업 숙소 개선 이행기간을 6개월 부여했다. 이행기간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이 기간을 명분으로 해서 기존 가설건축물 숙소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물론 숙소 개선이 이행기간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시 재고용허가를 취소하고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제재 역시 이후에 모든 숙소를 정부가 실제로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여전히 비닐하우스 바깥의 가설건축물에 대해서는 지자체에 신고필증을 받으면 숙소로 활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보니 포천시같은 지자체에서는 아예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둔다고 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규정한 근로기준법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생각인가? 지자체들이 농업주들이 근본적인 숙소개선을 하지 않아도 대략 눈감아주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지 심각한 우려가 든다. 숙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는 원칙적으로 가설건축물을 하우스 안이든 밖이든 규제를 하고, 지자체와 부처들이 함께 숙소개선 지원을 해야 한다. 이행기간 설정, 농업주들의 개선 방기, 지자체의 관리감독 소홀과 묵인을 통해, 실질적 개선 없이 겉핥기식 조치가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나마 이러한 미흡한 대책도 이주노동자들의 희생과 이주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와 지속적인 대책마련 요구 활동으로 인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故속헹님의 죽음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피해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온전한 권리보장을 실현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과 손잡고 함께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2021년 3월 2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